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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사계

일제 강점기 한국 한국 문인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늘 엄혹한 시대를 건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경제의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그러나 우리 민족이 겪어낸 엄혹한 시대를 하나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일제 강점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말과 정신까지도 말살하려고 했던 암울한 시대에도 한국의 문인들은 그들만의 색깔로 어려움과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 모습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는 사계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큰 영감을 준다.
우리는 늘 엄혹한 시대를 건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경제의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그러나 우리 민족이 겪어낸 엄혹한 시대를 하나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일제 강점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말과 정신까지도 말살하려고 했던 암울한 시대에도 한국의 문인들은 그들만의 색깔로 어려움과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 모습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는 사계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큰 영감을 준다.
김소월
시인

김소월은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이지만, 호인 소월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관은 공주다.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향년 33세로 병사한 그는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민족 고유의 정서에 기반한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출생 1902년 9월 7일, 북한
사망 1934년 12월 24일


강경애
소설가

강경애는 일제강점기 황해도 출신 여성 소설가, 작가, 시인, 페미니스트 운동가, 노동운동가, 언론인이다. 필명은 '강가마'이다.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가 두 해 뒤, 동맹 휴학과 관련하여 퇴학당한 후, 동덕여학교에서 1년 정도 수학했다.
출생 1906년 4월 20일, 북한
사망 황해도


김현구
시인

본명은 현구(炫耉). 전라남도 강진 출신. 배재고등보통학교 (1920)와 일본에서 수학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1930년 10월에 발간된 『시문학(詩文學)』 2호에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물에 뜬 갈매기」·「거룩한 봄과 슬픈 봄」·「적멸(寂滅)」 등 4편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 뒤
작품을 매우 아껴 쓴 시인이며, 그 내용의 경향이 강한 서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과 인생에서 느낀 감정을 부드러운 가락에 담고 있는 탓에 시문학파 시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출생 1904년(고종 41)
사망 1950년


김창술
시인

일제강점기 「여명의 설움」, 「아-지금은 첫겨울」, 「문열어라」 등을 저술한 시인.
해방이후 분단이 되면서 그의 문학은 북한문학사에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시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1920∼30년대 경향시의 변모과정과 일치하는 시인으로 평가하며 또한 계급의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낸 정치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한다. 노동자시인으로서 개인이 처한 가난을 사회현실과 연결시켜 개인의 삶에 역사의 흐름을 반영한 리얼리즘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출생 1903년(고종 40)
사망 1950년


노천명
시인

노천명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 작가, 언론인이다. 본관은 장연노씨이며, 황해도 장연長淵군 출생이다. 사슴을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에 비유한 시로 유명하며, 친일파로 평가된다. 아명은 노기선이나,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넘긴 뒤 개명하였다.
출생 1912년 9월 2일, 황해도
사망 1957년 12월 10일


박아지
시인

해방 이후 『심화』, 『종다리』 등을 저술한 시인. 희곡작가.
본명은 박일(朴一). 함경북도 명천 출신. 19세에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도요대학을 수학하다가 1926년 중퇴하고 귀국하여 1927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다. 이후 소년 잡지 『별나라』의 편집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농민시와 동요를 많이 썼으며, 3편의 희곡과 몇 편의 평론을 발표하였다.광복 뒤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우리문학』의 편집에 관여했으며,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이 결성된 뒤 월북하였다.
출생 1905년
사망 1959년


변영로
시인

변영로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동아일보 기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한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밀양이다. 형은 법조인 변영만과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이다.
출생 1898년, 서울특별시
사망 1961년 3월 14일


윤동주
시인

본관은 파평, 아호는 해환이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시를 썼고,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뒤 1942년 일본으로 가서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그 해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학했다.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실패했으며, 1943년 귀향 직전 항일운동 혐의로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은 뒤 광복을 앞두고 28세의 나이로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광복 후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출생 1917년 12월 30일, 명동촌
사망 1945년 2월 16일, 일본


이상
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이다. 본명이 김해경이며 본관이 강릉 김씨이다.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3년에는 기사를 그만두고 다방을 경영하면서 문인들과 교류했고 구인회 활동을 했다. 혼인 후 일본에 갔다가 사상불온 혐의로 구속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일본 병원에서 사망했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이다.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무의식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생 1910년 9월 23일, 서울
사망 1937년 4월 17일, 일본


이상화
시인

작가이자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상화, 무량, 백아이다. 한때 일본에 유학했고 1922년 『백조』 창간호에 동인으로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했고 의열단 관련 사건으로 구금되기도 했다. 초기의 시에서는 생명의 강렬한 욕망과 호흡, 인습에 대한 공공연한 반역과 도전이 드러난다. 사회참여적 색조를 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개벽』지 폐간의 계기가 된 작품으로, 치열한 반골기질이 표현되어 있다.
출생 대구
사망 1943년 4월 25일, 대구


이장희
시인, 번역문학가
본관은 인천이고 호는 고월이다. 본명은 이양희(李樑熙), 아호는 고월(古月). 대구 출신. 1920년에 이장희(李樟熙)로 개명하였으나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사용한 것이 본명처럼 되었다. 이장희의 전 시편에 나타난 시적 특색은 섬세한 감각과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적 소재의 선택에 있다.
출생 1900년 11월 9일
사망 1929년 11월 3일, 대구


이효석
작가, 언론인, 수필가, 시인
한때 숭실전문학교의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호는 가산이며, 강원 평창 출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이다. 「메밀꽃 필 무렵」, 「들」, 「여수」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의 성격이 짙어 ‘동반작가’라는 호칭을 듣기도 했다. 1933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분명히 하였다.
출생 1907년 2월 23일, 평창군 진부면
사망 1942년 5월 25일, 북한 평양


이해문
시인

예산군 관내 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0년 6·25동란 때, 인민군에 의해 부르주와 반동으로 몰려 총살되었다고 한다. 시집으로는 1939년 1월 시인춘추사에서 간행한 『바다의 묘망(渺茫)』 한 권이 있을 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流露), 곧 감상과 낭만성이 이해문의 시적 특색으로 되고 있다.
출생 1911년
사망 1950년


최학송
시인, 소설가

일제강점기의 시인 겸 소설가이다.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라는 아호로도 유명하다.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한 그는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내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소년시절을 빈궁 속에 지내면서 문학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이광수의 글을 읽으면서 사숙(私淑)하기 시작하였다.
출생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사망 1932년 7월 9일


최남선
시인

문화운동가이며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반면, 이광수와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 아명은 창흥, 자는 공륙, 아호는 육당이며, 본관은 동주.
출생 1890년 4월 26일
사망 1957년 10월 10일


채만식
소설가, 극작가

일제강점기 「인형의 집을 나와서」·「탁류」·「레디메이드 인생」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나, 1936년 이후는 창작 생활만을 했다. 총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소설과 희곡·평론·수필을 썼다. 채만식은 풍자적 수법으로 식민지 상황의 현실을 반영하고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출생 1902년 7월 21일
사망 1950년 6월 11일


황석우
시인

호는 상아탑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과를 졸업하였으며, 1920년에 김억, 남궁벽, 오상순, 염상섭 등과 함께 문학지 《폐허》의 동인이 되어 상징주의 시 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출생 1895년
사망 1959년


현진건
소설가

일제강점기 「빈처」, 「운수 좋은 날」, 「고향」 등을 저술한 작가, 소설가 겸 언론인, 독립운동가 였다. 본관은 연주 현씨(延州 玄氏)이고 호는 빙허(憑虛)이다. 장편·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이다. 특히 식민지시대의 현실대응 문제를 단편기교와 더불어 탁월하게 양식화한 작가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출생 1900년 8월 9일
사망 1943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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